해남 산이면 노송정 김해김씨 이야기
고문서를 통해 본 海南 老松亭 金海金氏 문중 연구에서 발취
.G901:A-0005742807
指導敎授 全炅穆
韓國學中央硏究院 韓 國 學 大 學 院
古文獻管理學專攻 : 曺廷坤
조선후기 각 가문에서는 현달한 선조들을 현양하기 위해 문집의 간행, 사우 의 건립, 정려의 포상 등의 활동을 전개하면서 가문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고 하였다.
이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문중활동이 바로 현조를 배향하는 문중사우와 서원의 건립이었다.
노송정 김해김씨 가문에서는 김낙일과 김재일이 문과에 급제하여 가문의 지위가 상승하였고 이를 통해 가문의 위상을 공고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 다.
그래서 선조들의 위선사업과 관해서 두 가지 활동을 전개하였다.
그 중 한 가지는 문중사우인 창의사를 건립한 것이었으며 나머지 한 가지는 선조들 의 행적을 모아 창의사적이라는 책으로 간행한 것이었다. 우선 창의사 건립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. 창의사는 1800년(정조 24)에 건립되었다. 창의사의 건립과 관련한 기록으로는 김낙일이 지은 「倡義祠上樑 文」과 이 남아있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
. 삼가 생각하노니, 하늘과 땅이 조화롭게 어울리고 남방과 북방이 서로 대하 여 산수의 수려한 기세가 모여 절의를 높이 받들 수 있는 기지이니 인걸인 지 령이란 말이 곧 산천의 수려함에 연유한다 하겠다. …(중략)…
아아, 지난 인조 14년 병자에 국운이 불운하여 당시의 위급함을 통탄하고 오랑캐들이 밀려드니 기강이 쇠퇴하였었다.
크고 장하도다. 이때 위대하신 우린 선조께서 의병을 일 으켜 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군량과 군비를 마려해 胡敵에 대항하였으니 당당 한 그 큰 충절과 표표한 정절이여 천년만년 영원토록 창의행적인 쇠하지 않고 태산북두처럼 우러러 볼 것이나 三間의 祠宇마저 마련하지 못하다가 이제 사 우를 마련하고 祭享을 奉行할 것을 논하여 선영을 편안케 하려 하니…(중략)…
삼가 기원하노니 상량을 한 후에 百祿이 고루 있게 하고 만세까지 모두 편안 하여 제향을 드리고 봉행함에 더욱 신명의 도움을 주시고 祠宇를 짓고 丹靑하 여 영구히 충과 효를 전하게 하리라.109)
109) 김진택, 백당공세덕지, 전남대학교 출판부, 1991, 63쪽 - 58 -
라고 하여 병자호란에 창의한 김안방 김련지 김안우 등의 선조들에 대해 제 향을 봉행하고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충효를 전하게 하기 위해 사우를 건립하 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.
상량문에서는 비록 병자호란에 한정하였으나 임진왜 란 당시에 관군으로 활동한 김선지까지 배향하여 창의사의 배향인물은 충절 인을 중심으로 배향한 것을 알 수 있다.
이들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고 다만 이들의 후손인 김낙일이 선조들의 행적을 모아서 간행한 창의 사적을 통해 이들의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.110)
창의사적에 의하면 임진왜란의 발발했을 당시에는 김선지가 관군으로서 참여하였다.
김선지는 1588년(선조 21)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 당시 관 군으로 활동하였는데
아래의 문서와 같이 軍功賞職으로 받은 교첩 2건이 전 해진다.111